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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2-03 15:42
2015. 2. 1일 주일 강단말씀입니다.
 글쓴이 : 김수정
조회 : 7,412  

제목 : 애통하는 사람

설교: 한승엽목사 본문 : 마5:1-4

우리가 보통 마태복음 5장을 잘 알려진 대로 팔복이라 하는데 복이 8가지만 있다는 표현이 아닙니다. 팔복은 통전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의 성품과 인격 속에 일관성 있게 논리적으로 나타나는 연속적인 성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주 가난한 자의 심령인 ‘나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구나’하는 마음을 가질 때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심정이 ‘애통’입니다. 이렇게 팔복은 서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고 순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내가 심령이 가난한 상태가 되어 내 안에 의가 없고 죄가 가득하다는 것을 발견할 때 나는 정말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는데 그리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정서가 '애통'이라는 것입니다.

 

1. 울어야 합니다.

본문의‘애통’은 자기 자신의 죄를 향한 애통을 말하는 것입니다(고후 7:10).

성령이 오셔서 하는 일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제일 먼저 자기 자신의 죄가 보이게 합니다. 보여야 회개할 수 있습니다. 보여야 아파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의 죄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질현상)보이면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잘 설명하는 구약의 두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야곱, 다윗)

① 야곱 : 야곱이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죽은 줄 알고 피 묻은 요셉의 옷을 붙잡고 웁니다. 이때 야곱의 슬픔을 표현할 때 오늘 본문의 ‘애통’과 같은 단어를 씁니다. 헬라어의 애통을 설명하는 9가지 단어 가운데 세상 어떤 것도 견줄 수 없는 슬픔, 가장 슬픈 아픔을 본문의 '애통'으로 표현합니다.

② 다윗 : 다윗의 경우는 복음적인 애통입니다. 다윗은 애통과 뗄 수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다윗이 큰 죄를 범했을 때 어느 날 나단이라는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옵니다. 다윗이 저지른 범죄를 드러내기 위해 이야기를 하나 꺼냅니다.

“왕이여, 어느 마을에 부자가 살았는데 많은 양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까이에 가난한 사람이 한 마리 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자에게 손님이 찾아왔는데 자기 집 많은 양 중에 대접한 게 아니라, 자기 딸처럼 돌보는 한 마리 양을 가진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빼앗아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다윗이 이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그놈은 죽일 놈이다!"

나단 선지자가 말합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 말에 다윗은 '악' 소리도 못 하고 무너집니다. ‘내가 지금 절망적인 존재로구나’ 그래서 얼마나 울었으면 ‘눈물로 침상을 띄우나이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깨달은 진리는 '인간은 여지가 없는 연약한 존재로구나. 그래서 예수님이 필요하구나' 다윗이 애통을 통해 구원으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줍니다.

 

2. 애통하는 사람은?

① "애통하다"를 뜻하는 헬라어 ‘펜테오’는'슬퍼하다, 근심하다, 애통하다' 를 뜻하며, 슬픔의 여러 가지 양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단어는 헬라어에서 죽은 자를 위하여 애곡하는 것에 대해 사용된 말로서 애통을 표현하는 헬라말 중 가장 강도가 높은 말입니다.

② 사도바울의 자기 표현

초기에는 “사도 중에 내가 지극히 작은 자라…(고전 15:9)”

중기에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엡 3:8)

후기에는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나가면 나갈수록 자기 자신의 보이지 않던 죄까지도 보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 애통하는 영적인 민감성이 생긴 것입니다.(약 4:8~10)

 

3. 애통하는 사람이 받는 위로는?

① 애통의 장애물

절망 : ‘나는 용서받을 수 없어’

자만 : ‘나는 그렇게 나쁜 놈이 아니야’

가벼움 : 삶의 실제를 다루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목적은 구원, 구원의 목적은 천국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때로는 고난과 아픔 속에서 인내해야 하고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아프리카 타조)

② 애통하는 사람이 받는 위로는 현재적이고 동시에 미래적인 것입니다.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에 해당하는 ‘파라클레데손타이’(파라칼레오)는' ~ 곁에, 가까이'를 뜻하는 전치사 ‘파라’와 '부르다'를 뜻하는 동사 ‘칼레오’가 결합된 것이며, 따라서 기본 의미는 '성령께로 (곁에, 가까이) 부르다'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의 위로하심은 '성령께서 곁에서 격려하다, 강하게 하다'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곧, 애통하는 사람이 받는 위로는 성령께서 우리 곁에서 오늘 그리고 살아갈 앞으로의 삶에서 격려해주시고 강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위로하심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갈 동안 모든 사람에게는 이러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애통하는 사람으로 매일 매순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누리는 안산중앙교회 모든 성도님 되시길 간절히 기도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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