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본문 : 마1:18-25
서론 :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기사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와 요셉의 가정에서 맏아들로 태어났지만 성령으로 잉태된 것과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요셉의 태도입니다. 창세기 37장에 나오는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까지 지낸 훌륭한 사람이지만 오늘 본문의 요셉은 한낱 목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격과 신앙은 본문에 드러난 것만으로도 훌륭한 점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요셉의 인격을 통해서 주시는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요셉의 인격과 신앙
(1)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19절). 여기서 말하는 의로운 사람이란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의롭다는 것은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바르게 살려는 사람이 적습니다. 이 말은 돈은 있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허영과 사치에 들떠 있는 부자들을 말합니다. 신앙의 경제 윤리는 동기와 방법과 목적의 정당성을 요구합니다. 쉽게 말하면 버는 것도 바르게 벌고 쓰는 것도 바르게 쓰는 것이 기독교 윤리입니다. 우리 시대는 의로운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로 망한 것도 의로운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때 소돔과 고모라에서 찾으신 사람들은 죄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옳게 살려고 하는 사람,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든 겸손은 은혜를 저장하는 저수지와 같습니다. 교회는 영혼의 병원입니다. 영적인 환자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치료의 역사도 일어납니다. 치유가 일어나려면 인자한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 용서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2)남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입니다(19절). 요셉은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고 드러내지 않고 관계를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남의 허물을 드러내는 사람과 그것을 덮어주고 치유해 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일 그 때 요셉이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문제 삼고 그것을 만 천하에 공포했더라면 마리아는 모세의 법대로 돌에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신22:20-21). 이런 율법을 아는 요셉이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문제를 수습하려 한 것입니다. 흰옷과 검정색은 속히 더러워집니다. 아무리 좋은 인격자라도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남의 옷에 먼지 묻었다고 손가락질 할 일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위대한 사람이나 신앙이 깊은 사람은 자기 허물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 놓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남의 허물은 덮어주고 감싸주고 치료해 줍니다. 요셉같은 사람이라야 역사와 교회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3)생각이 깊은 사람이었습니다(20절). 성경은 요셉이 ‘이 일을 생각할 때에’라고 기록합니다. 그 때 요셉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목수로 겨우 먹고 살아가는 총각이 장가들기 위해 약혼하고 결혼 날짜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날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임신을 했다니 그 배신감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때 그가 이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할 때 주의 사자가 현몽합니다. 고요하고 세미한 계시의 음성이 임하시길 축복합니다. 그 내용은 마리아가 부정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과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과 태어날 아기가 죄인을 구하러 오실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기 이름은 예수라고 하라고 지시해 주었습니다. 생각하기 전에 행동하는 사람은 민첩하고 동작은 빠르지만 실수가 많습니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는 사람은 동작은 느리지만 실수가 적습니다. 요셉은 생각은 심사숙고했지만 신중하게 기다렸습니다. 큰 일일수록 깊이 생각하고 기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장난감 집은 금방 짓지만 높은 빌딩은 짓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4)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24절).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라고 했습니다. 요셉에게는 자기 나름의 판단과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서로 좋은 관계로 소문내지 않고 약혼 관계를 정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주의 사자는 내 아내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며 요셉의 생각을 바꾸게 했습니다. 내 뜻이나 내 판단대로 밀고 나가느냐 아니면 그것을 포기하고 주의 뜻을 따르느냐를 그 순간에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말씀대로 행하기로 했습니다. 요셉처럼 순종하는 것이 참 신앙인입니다.
- 의롭고, 남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고, 깊이 생각하고, 순종하는 요셉을 보면서 받은 은혜는 무엇인가?
2. 주님이 오신 목적을 살펴봅시다(마1:21).
(1)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러 오셨습니다(21절). 본문에서 말하는 자기 백성은 본래 이스라엘 백성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부인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하고 예수를 배척한 이스라엘은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복음은 이방인인 우리들에게로 왔습니다. 사도바울은 내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제외됨으로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다면 원하는 바라고 했습니다. 끝까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이제는 이방인에게로 가겠다고 한 후에 이방인의 선교사로 간 것입니다. 그 후로 하나님의 백성의 개념이 달라졌습니다. 전 세계, 지구촌에 살고 있는 사람이 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불교는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받는다는 점이 다릅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신 사건입니다(요1:1, 14). 종교는 사람들이 고행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믿으면 구원받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2)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오셨습니다(23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했고 그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것입니다. 함께 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뜻이 맞는 사람이나 배울 것이 있고 본 받을 것이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행복한 공간입니다. 그러나 빚쟁이와 걱정스러운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승강기를 타고 1분 정도 함께 올라가도 낯 모르는 사람과는 쑥스럽고 멋쩍고 불안합니다. 임마누엘의 의미는 행복한 함께입니다.
- 2015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누리기 위해 내가 순종할 말씀은 무엇인가?
맺는 말 : 18年이나 알고 지내던 사람이 자기를 아는 척 하지 않고 남 보듯이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죽일 놈, 살릴 놈 하고 싸웁니다. 오래 사귄 친구 사이가 1분의 불친절 때문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나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들을 지키시고 복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감싸 주시고 안아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나의 영원한 친구는 예수님이십니다. 나의 영원한 동반자도 예수님이십니다(마28:18-20).
*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고 결심한 것과 내게 실천 가능한 것은 어떤 것이 있는지 나누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