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덴 전도
본문 : 행17:16-23
서론 : 사도행전 17장 1절부터 9절 말씀은 빌립보에서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지나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하여 3주 만에 교회가 세워진 내용입니다. 10절부터 15절 말씀은 데살로니가에서의 핍박을 피해 베뢰아에 가서 일주일 만에 교회가 세워진 내용입니다. 베뢰아 교회는 말씀을 받을 때 신사적인 자세로, 너그럽고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받아 모범적인 교회로 설립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인 아덴은 아테네를 말합니다.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요, 철학의 중심지인 아테네에서 전도를 했는데 핍박은 없었지만 전도의 열매도 없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복음을 전할 때 반대가 있고 핍박이 있는 것을 두려워할 일만은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아덴에서 했던 설교내용은 논리적이고 말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아덴은 우상숭배가 가득한 죄가 많은 곳으로 아덴이야말로 선교할 만한 곳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아덴에서 선교를 실패하고 고린도에 가서는 다시는 아덴에서와 같이 전도하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자랑하지 않기로 작정했노라(고전2:2). 논리적이고 철학적이고 아름다운 말로 전도했는데 열매가 전혀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순수한 복음 외에는 그 어떤 식으로도 전도하지 않겠다고 결단합니다.
1. 아덴 전도와 바울(행17:16-21)
아덴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었습니다(전12:13-14). 하나님의 뜻에 무지했습니다(고전2:10-16). 물질과 쾌락을 추구했습니다(딤전6:9-10). 베뢰에서 핍박이 너무 심해서 성도들이 사도 바울을 다른 곳으로 가서 선교하도록 합니다. 바울은 이 동네에서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는 주님의 말이 생각나서 성도들의 신앙이 이만큼 착실하게 성장한 것을 보고 떠나면서 디모데와 실라에게는 더 머물면서 양육하도록 부탁하고 아덴으로 떠납니다. 아덴에 와 보니 세계 최고의 철학 도시라고 했는데 가는 곳마다 우상을 깎아 세워놓았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이 시대에 3만개가 넘는 우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그 모습을 보고 마음에 분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무지하고 어두울 수 있는가? 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상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냄새도 맡지 못하고,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고,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상 앞에 가서 복을 달라고 빕니다. 철학이란 지식과 지혜를 사랑한다는 말인데 참 지혜는 창조주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고, 지식은 자신과, 세상을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자기를 바로 알고, 피조물을 바르게 알아야 되는데 최고의 철학의 도시 아덴 사람들은 반대로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지성인들이 잘못된 것을 보고 따라가는 것을 보고 우리는 의분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을 보고 사도바울은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설교를 했습니다. 복음을 이방인에게도 전하고, 저자에서도 전했는데 이 저자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도 철학을 가르쳤습니다. 전도하기 제일 좋은 곳이 예배당입니다. 교회 나온 사람들은 영원한 세계에 관심이 있어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른 복음만 선포되면 대부분 결신합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물질이 그들의 신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잘 아니 눈에 보이는 우상을 섬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물질에 대한 집념이 대단합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 승천하심과 재림주로 다시 오실 약속입니다. 불신자들은 죽으면 끝인 줄 알고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지혜로운 줄 압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철학자들도 바울과 변론했는데 그 변론이 변해서 쟁론이 되었습니다. 말 잘한다고 전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꼭 해야 할 일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시끄러운 저자에서 변론이 쟁론이 되니 아레오바고로 가서 듣자고 합니다. 아레오바고는 재판도 하고 강연도 하는 명소입니다. 1차적인 반응이 네 말을 들어보니 아는 것이 많은 모양인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니 좀 배워야겠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다시 해 보라고 합니다.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은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철학적인 말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복음이 선명하게 증거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 나는 하나님을 바로 아는 참지혜를 가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예배, 목장, 삶공부)
2. 알지 못하는 신(행17:22-23)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합니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다. 당신들이 무엇인가 섬기고 싶어서 우상을 이렇게 많이 깎아두고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가상하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써 있는 단을 보았는데 의지하고 섬기고자 하면 바른 신을 섬겨라. 내가 바른 신을 너희들에게 가르쳐 주겠다.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당신들의 구주시다.”라고 복음을 전합니다. 사도바울은 아덴 사람들의 종교심을 칭찬하면서 말을 시작하는데 복음은 전파되지 않았습니다. ‘알지 못하는 신’에게 복을 비는 것은 인간 심성의 완전 타락을 의미합니다.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5:5). 우상숭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시3:8).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인생의 두려움을 해결하려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 나는 가정예배와 자녀들을 위한 축복기도를 하고 있는가?
맺는 말 :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에게는 회당에 가서, 헬라인들은 저자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환경, 여건에서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고 결심한 것과 내게 실천 가능한 것은 어떤 것이 있는지 나누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