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데살로니가 전도
본문 : 행17:1-9
서론 : 사도행전 16장은 빌립보 교회를 세운 내용이고, 사도행전 17장에는 세 지역에서의 전도의 내용이 나옵니다. 1~9절은 데살로니가 선교, 10~15절은 베뢰아 선교, 16~34절은 아덴에서 전도한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은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한 기록입니다. 데살로니가에서는 3주 밖에 사역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3주 만에 아주 귀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신약 교회 중 모범적인 교회를 꼽자면 데살로니가의 교회와 베뢰아 교회를 들 수 있습니다. 베뢰아 교회는 워낙 신사적인 교회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기 때문에 그 교회는 편지를 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는 아주 훌륭한 교회가 세워졌으나 아덴에는 교회가 세워지지 못했습니다. 아덴은 철학의 도시입니다.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던 사도 바울은 아덴에서 철학적으로 말씀을 증거하다가 십자가의 증거가 약해져서 교회가 제대로 세워지지 못했습니다. 그 때 바울 사도가 전도하고 싶었던 곳이 바로 아테네와 로마였습니다. 아테네는 문화의 중심지요 로마는 정치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런데 아테네에서는 전도의 열매를 맺지 못했고 로마는 죄수의 몸으로 갔지만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전도의 우리의 생각과 계획과는 달리 성령님께서 하시는 사역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데살로니가 교회가 어떻게 귀한 교회로 세워지게 되었는지 살펴봅니다. 교회의 기초를 어떤 분이 놓느냐가 중요합니다.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 순수한 믿음으로 세워진 교회와 싸워서 갈라진 교회, 서로 시기하여 세워진 교회는 나중에 성장해서도 그 영향력이 다릅니다.
1.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행17:1-3)
바울 전도팀은 기회를 잘 선용했습니다(사55:6). 사명이 불붙는 열정이 있었습니다(렘20:9). 힘 있게 말씀을 전파했습니다(고전1:22-23). 빌립보에서 루디아와 간수장의 가정을 전도하고 로마의 시민권자인 자신들을 재판도 없이 매로 치고 감옥에 가둔 일로 두려움에 떨며 성을 떠나기를 간청하는 관리들의 간청을 받고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지나 도착한 곳이 데살로니가입니다. 빌립보에서 약 150리, 약 60km가 떨어진 곳에 암비볼리가 있고, 암비볼리에서 150리 떨어진 곳에 아볼로니아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다른 사람이 복음을 전하여 터를 닦은 곳, 남의 터 위에 집을 짓지 않겠다는 정신으로 전도현장을 갔는데 아무 곳에서나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전략적인 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했고,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는 지나쳐갔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빌립보 교회가 선교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전도도 전략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지역을 사로잡고 있는 인물을 먼저 전도하고 인물을 키워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도시는 그 당시 마게도냐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디를 가든지 5가정만 모이면 회당을 짓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모든 직업이 성직이라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일하여 돈도 많이 법니다. 그리고 절약합니다. 그래서 흩어진 디아스포라에서 전 세계에 영향력 미치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흩어져 살면서도 회당을 만들고 유대교를 이방인들에게도 전했고 믿는 사람은 할례를 받고 유대인과 함께 회당에서 구약 성경을 읽으면서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구약에 메시야가 오신다고 가르쳤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증거하는 것이 전도에 효과적이기 때문에 바울은 가는 곳마다 회당을 찾았습니다. 바울이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갔다는 말씀은 선교 중에도 규칙적인 신앙생활을 힘썼다는 것입니다. 주일에는 밤에도 모였습니다. 레위기 23장 32절에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입니다. 사도바울은 회당에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했습니다. 말씀에 대해 알고 있고 생활 속에서 은혜받은 바가 있다면 누구라도 나와서 권면하면 됩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 유대인들은 선각자입니다. 사도바울에게는 너무나 좋은 기회였습니다. 회당에서는 구약성경을 배우는데 구약에서 예언한 그 메시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면서 그분의 탄생, 십자가에 죽으심,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주로 다시 오실 것을 증거했습니다. 전도의 초점은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입니다. 전도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신앙을 잘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전해야 합니다.
- 기회를 잘 선용하여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전도의 방법은 무엇인가?
2. 데살로니가의 사도바울(행17:4-9)
예수님은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을 내어쫓으셨습니다(막1:39). 사도바울도 회당 중심으로 전도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영광을 모든 민족에게, 예수님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했습니다(대상16:24). 바울이 이렇게 설교한 결과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복음을 받았습니다. 구약을 잘 아는 유대인들이 복음을 믿은 것이 아니라 경건한 이방인들이 먼저 복음을 받았습니다. 경건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믿고 순종하겠습니다”라는 태도를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을 때 많은 무리와 귀부인들도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자기들보다 은혜를 받는 것을 시기하여 폭력배를 동원합니다. 언제든지 배우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시기는 살인을 불러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자 가인은 동생 아벨을 시기하다가 죽였습니다. 시기가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자신들보다 사도바울이 낫다고 생각하니 시기가 나고 말로는 당해 낼 수 없으니 수단을 부린 것입니다.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이미 바울과 실라는 다른 곳으로 전도하러 가고 없었습니다. 복음을 들고 가면 오늘날에도 루디아가 있고 야손이 있습니다. 화성우리중앙교회가 전도하는 곳에도 루디아와 야손과 같은 일군을 만나게 하실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바울과 실라 대신 야손과 그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이들이 가는 곳마다 성을 소요케 한다고 고소합니다. 그들을 정치범으로 몰기 위해 예수라는 다른 임금을 모시려 한다고 고자질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어디를 가든지 복음을 전하면 감격하여 기뻐하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고소는 내용이 맞지 않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셨는데 어떻게 이 땅의 임금이 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읍장들은 야손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줍니다.
- 교회와 목장에서 루디아와 야손과 같은 좋은 동역자가 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맺는 말 : 로마서 16장 21절에 야손에 대해 나옵니다.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모범적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 전도하기 좋은 거점을 찾아서 정했습니다. 그리고 순수한 주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만 전했더니 3주 만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핍박 중에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에 믿음으로 모든 일을 했을 뿐 아니라 서로 어려운 일을 먼저 했습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수고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기초를 바로 놓았기 때문에 복음의 좋은 소문이 이들을 통해 각처로 퍼져나갔습니다. 우리도 칭찬하는 사람이나 핍박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사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감으로 전도의 열매를 맺는 축복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고 결심한 것과 내게 실천 가능한 것은 어떤 것이 있는지 나누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