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단메세지 2014. 3. 2
제목 : 그 땅이 주는 복음
설교: 한승엽목사, 본문 : 여호수아 6:15-17
서론 : 오늘 말씀을 통해 가나안의 축복인 그 땅이 주는 복음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신앙생활은 인간의 지식이나 능력이나 힘이나 배경으로 사는 신앙이 아니고 철저히 주님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날마다 내 마음의 묵상과 내 입술의 열매가 하나님께 열납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봉헌’이라고 합니다. 가나안의 축복, 그 땅이 주는 복음은…
1. 우리는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수 6:2, 16)
이스라엘 백성은 선택된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가나안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아주 존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선택된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이 땅에 세워야 된다고 하는 중요한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매우 존귀한 자들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컬어 우리를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셨고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내가 누구인가? 라는 이 정체성을 언제나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 나는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나요?
2. 가나안의 축복은 ‘부요와 형통’입니다. (신 6:3)
젖은 목축입니다. 젖은 소나 양이나 염소가 주는 음식입니다. 젖이 흐른다는 말은 목축이 잘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꿀은 농업입니다. 꿀은 꽃에서 나옵니다. 식물이 잘 되어야 꽃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꿀이 흐른다는 말은 농업이 잘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말은 목축과 농업이 잘 되는 땅이란 말입니다. 당시 사회는 산업사회, 도시 사회가 아닌 농경사회입니다. 목축과 농업이 잘 된다는 말은 모든 일이 부요하다는 말입니다. 가나안 땅은 부요한 땅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합니다. 흐른다는 말은 형통을 의미합니다. 부요한데 형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남는데 뒤로는 밑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목축이 잘 되는 데 적이 침범하여 다 빼앗아 갈 수도 있습니다. 농업이 잘 되었는데 도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젖과 꿀은 넘쳐 흘러야 합니다.
* 나는 부요와 형통의 축복을 누리고 있나요?
3. 하나님의 땅에서 우리 삶을 ‘봉헌’해야 됩니다. (수 1:3, 출3:5)
여리고라는 견고한 요새를 앞에 두고 하나님께서 직접 총 사령관이 되셔서 백성을 지휘하시는데 앞뒤에 이스라엘 백성을 배치하시고 중앙에는 법궤를 멘 제사장들을 배치했습니다. 그 법궤 앞에는 나팔수가 있었습니다. 구약에 나팔을 부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① 말 그대로 전쟁을 하기 위해서 선전포고를 하는 격에 해당하는 '하초츠라'라는 히브리어입니다. 이것도 나팔을 분다는 뜻입니다. ② 똑같이 나팔을 분다는 뜻이지만 다른 의미에서 사용하는 말이 있는데 '소파르'입니다. 이것은 전쟁을 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완전한 평화와 평안을 선언하는 차원에서 나팔을 불 때 쓰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여리고성을 돌았던 나팔수 7명이 불었던 것은 '소파르'의 나팔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리고는 총칼대포를 가지고 인간의 힘으로 싸워서 얻을 땅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400년 전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취할 땅이라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믿기 때문에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소파르', 즉 이 땅에 이미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포하기 위해 그 전에 여리고성을 도는 것입니다. 바로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땅으로 선포하고 ‘봉헌’하는 것입니다.
* 나는 하나님의 화평을 선포함으로 ‘봉헌’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결론 :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진격하는 것 자체는 땅을 저주하고 진멸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그 땅을 구원하고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대적하는 자에게는 심판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가나안의 족속들을 공격하여 다 죽이게 됩니다. 17절의 바친다는 말이 죽인다는 뜻입니다. 이 '죽인다'는 의미에 또 다른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바친 것', 즉 죽인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다고 성경을 말씀합니다. (레 27:28)
'성도'는 거룩한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성도가 모든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거룩하게 되었습니까? 우리의 실력으로 거룩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한 길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룩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법궤를 중심으로 그 앞에 평안을 선포하는 나팔수, 즉 제사장이 나팔을 붑니다. 이 법궤 위의 속죄소에 쏟아 부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이 땅을 하나님께서 이미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에게 붙이셨고 이 땅이 구원(화평)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부요와 형통의 축복을 저와 여러분들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가나안의 축복, ‘그 땅이 주는 복음’입니다.
*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고 결심한 것과 내게 실천 가능한 것은 어떤 것이 있는지 나누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