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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4-01 14:56
2015. 3. 29 주일강단말씀입니다.
 글쓴이 : 김수정
조회 : 4,847  

승리의 외침 “다 이루었다”

 

말씀: 한승엽목사 / 본문: 요19:16-30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우리 주님의 마지막 승리의 외침이었습니다. 우리는 “다 이루었다!”라고 하시는 주님의 승리의 외침 때문에 엄청난 은혜를 입게 된 사람들입니다. 누가 우리를 정죄하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우리에게서 장차 주님과 함께 누리게 될 그 영광을 빼앗아갈 수 있겠습니까? 누가 우리의 입에서 그리스도를 향한 찬송을 빼앗아갈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 이루었다!”고 하는 이 외침 속에 하늘에 속한 하나님 자녀 된 모든 축복과 특권이 우리에게 다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십자가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갑시다. 우리가 십자가에 가까이 나가면 나갈수록 “다 이루었다!”고 외치시는 주님의 음성이 더 분명하고 또렷하게 들릴 것입니다. 주님의 승리의 외침이 우리에게 큰 소망과 위로가 되기에 지금 이 말씀을 함께 나누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1. 예수님은 넘겨지셨습니다(19절).

오늘 성경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넘겨지시게 됩니다. ‘넘겨주니라’라는 말은 예수님이 무기력해서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당했다는 표현이 아닙니다. 이 단어를 좀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로마서 8장을 32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여기서 ‘내주신’이라는 단어가 ‘넘겨주다’라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즉 아들을 십자가에 넘겨주신 주체가 누구냐 하면 로마 군병이 강해서가 아니고 그들의 세력이 예수님보다 더 우월해서가 아니라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입니다. 예수님을 내어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십자가는 무기력해서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약대로 나의 죄를 대속하시고 나를 구원시기 위해 넘겨주신 사건입니다.

 

2 사람들은 구원에 무관심했습니다.

① 대제사장 그룹은 구원에 무관심했습니다.

대제사장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분명한 죄목이 있고 분명한 증거가 있어 예수님을 재판대에 세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을 일단 잡아 놓고는 그를 죽일 구실을 찾느라고 밤새도록 법석을 떨어야 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재판이 천하에 어디 있습니까? 죽을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잡아와서 재판하는 것이 정상 아닙니까? 생사람을 끌어다 놓고 그에게 무슨 죄목을 씌워 죽일 것이냐를 궁리하느라 밤새도록 법석을 떠는 그런 재판이 천하에 어디 있습니까? 또 그들이 들고 나온 죄목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예수님의 죄목은 ‘행악자’라는 것이었습니다(요18:30). ‘행악자’(行惡者)란, 말 그대로 ‘악을 행하는 자’를 뜻합니다. 그것도 어쩌다가 한두 번 실수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고질적으로 악을 행하는 흉악범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 말만큼 예수님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 또 어디 있습니까? 대제사장들이 한 푼의 양심이라도 있었다면, 한 치의 상식이라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었다면 예수님에게 이런 얼토당토않은 죄목을 걸어 십자가에 처형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밤새 불법 심문을 받다가 예수님은 새벽에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넘겨지고 가야바에 의해 같은 새벽에 로마총독인 빌라도가 있는 관정으로 예수님은 다시 넘겨집니다. 관정으로 끌고 갔으면 관정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가지 않고 문 밖에서 예수님을 넘깁니다. 그 이유가 아이러니합니다. 대제사장 그룹이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정작 유월절의 본체가 되시고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면서 유월절을 잘 지킬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② 빌라도 총독은 구원에 무관심했습니다.

빌라도는 또 어떻습니까? 그가 법정을 네 번이나 들락거리면서 여러 번 반복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예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그는 아무리 심문을 해 봐도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노라고 자기 입으로 분명히 시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즉시 석방해야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는 입으로는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떠들면서 군병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했습니다. 또 예수님에게 가시관을 씌우고 홍포를 입혀 희롱 당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아무 죄도 찾지 못했노라고 말하던 바로 그 입으로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이라는 극형을 선고했습니다. 법을 집행한다고 하는 사람이 되어서 예수님에 대한 판결보다 더 비열하고 비양심적인 판결이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빌라도가 조금이라도 양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또는 조금이라도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선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재판 가운데 빌라도가 예수님께 유명한 질문을 합니다. 18장 38절입니다.

[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진리가 무엇이냐?” 이 말은 빌라도가 진리를 궁금하게 여겼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보게 진리가 밥 먹여 주나? 내가 보니 당신 죄도 없는 것 같은데...” 이 말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함을 여러 차례 자신의 입으로 증명했던 사람입니다(요 18:38, 요 19:4, 요 19:6) .

③ 로마 군인들은 구원에 무관심했습니다.

로마의 키케로(Cicero)가 십자가를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죽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잔인하고 무서운 죽음 앞에서 나를 구원하는 십자가에 대해 전혀 관심 없었던 로마 군인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봅니다.

“이것은 나누지 말고 제비를 뽑아 누군가 한 사람이 가지기로 하자”

로마 군인들은 그 제의를 좋게 여기고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누가 그 옷을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동전 던지기를 한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지 아직 10여 분도 채 안 된 때입니다. 그러니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그런데 찢어진 손발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십자가의 기둥에는 핏물이 흘러내리는 바로 그 발치에서 로마 군인 넷이 예수님의 옷을 놓고 ‘이것은 내 것이고, 저것은 네 것이다.’ 하면서 옷을 나누고, 심지어 마지막으로 남은 속옷까지도 누가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동전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들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그 처참한 죽음을 당하고 있는 그 현장에서 옷가지 하나라도 더 차지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네 명의 로마 군인들을 측은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시며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그렇습니다. 로마 군인들의 마음은 칠흑 같은 무지의 어두움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분이 누구인지, 또 그분이 왜 죽으셔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구원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자기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주스러운 무관심이 그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오직 남아 있는 것은 탐욕이었고, 다른 사람보다 하나라도 더 얻는 것이었고, 다른 사람보다도 한 발이라도 더 앞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더 잘 사는 것, 이것 말고는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 로마 군인들에게서 우리가 예수님을 몰랐던 때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몰랐을 때,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것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을 때,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추호도 인정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그 때 우리의 관심사가 무엇이었습니까? 남보다 하나라도 더 소유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남보다 조금이라도 앞서는 것이었지 않습니까? 십자가가 도대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었습니까? 우리는 로마 군인들의 모습에서 구원받기 전의 내 모습과 오늘날 비신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3.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습니다.”

십자가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이 한 마디는 죽어가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지르는 외마디 비명처럼 들렸을 것 같습니다. 사형수의 한 맺힌 절규처럼 들렸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외침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완전한 승리의 외침이었습니다. “나는 이겼다. 나는 해냈다. 드디어 나는 완주했다”하는 승리의 외침이었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 26:39)”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조차도 피땀을 쏟으며 고민하셨을 정도로 지나가고 싶으셨던 어렵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계셨기 때문에 갈보리 십자가의 그 길을 유월절 어린양과 같이 묵묵히 걸어 가셨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에는 세 가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① 구약에 예언된 모든 예언들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뜻입니다(눅24:25 이하). ☞ 언약 성취

②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려고 하신 하나님의 영원하고 장대한 계획이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 구원성취

십자가를 통해서 이제 모든 죄인들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 이루었다!”고 외치는 순간 아무도 접근할 수 없게 막아 두었던 지성소의 휘장이 둘로 갈라져 내렸습니다. 그 결과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③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는 데 성공하셨다는 뜻입니다. ☞ 하나님의 사랑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날마다 “다 이루었다”고 외치신 우리 주님의 승리의 외침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쳐 봅시다. 이 승리의 외침에 신자의 소망과 위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러한 은혜를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 모두에게 허락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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