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3부강단말씀 - 한승엽목사 2016. 7. 17
사랑할 때 오는 유익(요일 3:18-24)
사도요한은 사랑의 사도라는 별명이 있는 분입니다. 요한일서를 읽어보면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사랑해야 할 것 같고 사랑하면 서로 좋으니까 사랑해야지 하지만 사랑할 때 오는 유익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오늘 요한은 우리가 이웃을 사랑할 때 오는 유익이 세 가지가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말씀합니다.
1. 사랑할 때 가책에서 자유해집니다.
내가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워할 때에 우리 주님께서는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할 때 구원의 확신이 생기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이웃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할 때 가책을 없애준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편 같으면 설거지 해주고 아내 같으면 남편 등을 두드려주고, 젊은 아내가 해산하면 미역국도 끓여 섬겨주고 평소 고마운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적은 편지를 보내주는 것입니다. 이런 구체적인 사랑의 행동이 우리를 가책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사랑의 행위, 진실 되고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가 우리를 가책에서 해방시켜줍니까? 진실 되고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는 ①우리의 구원을 구체적으로 확인시켜 주고, ②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할 때 절대적인 기도응답을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가장 큰 특권은 기도응답의 특권입니다. 우리가 요구해서 받는 특권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주신 특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기도 응답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기도 응답 못 받는 것이 신기한 일입니다. 이러한 절대적으로 응답받는 기도에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무조건 응답은 아닙니다. ①먼저, 믿음으로 기도해야 하고 ②두번 째는 서로 사랑함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구하는 대로 기도응답 받는 데는 믿음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응답을 주시는 것은 나만을 위해 주시는 것보다는 우리 주변을 위해 주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도 기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나를 위해서 기도할 때도 이웃에 대한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사랑할 때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비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기 원한다면 행함과 진실함으로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거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작은 것이라도 실천해보는 것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모순이 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열매가 사랑인데 사랑이 안 되니까 성령의 열매를 맺기 원하는데, 지금 사랑을 해야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자동차가 모터로 움직이지만 이 모터를 돌게 하기 위해서는 사실 조그만 모터에 먼저 시동을 걸어주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시동을 걸어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적용 :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사랑하지 못한다는 부담 가운데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보여주시는 사랑 가운데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행하면 그것으로 기뻐하십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것은 우리 주위에서 이루어집니다. 가까운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시려면 큰 것 하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사랑의 기회를 달라고 구하시고, 기회가 보여질 때 작은 사랑을 실천하시면 됩니다. 주님께서 내게 사랑을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주셨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실천하는 것이 오늘 우리 주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지금까지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가책에서 해방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막연히 사랑하지 못한다는 부담에서 자유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회를 보여주실 때에 그 기회에 순종하겠다고 결심하시고 작은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참된 자유함을 우리 소중한 성도님들 모두가 누리실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일2부강단말씀 - 한기섭목사 2016. 7. 17
주를 향하여 손을 들고Ⅰ (예레미야애가 2:17-19)
사회학자들은 하나의 집단이 형성되는 조건으로 동일한 이념, 동일한 목표, 동일한 언어 사용을 들고 있습니다. 이념과 목표가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는 일정한 집단이나 공동체 형성이 어렵습니다. 이 좋은 예를 창11장의 바벨탑 사건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힘을 과시할 목적으로 하늘에 닿는 탑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들의 행위를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하시고 흩으신 것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언어의 소통이 중요한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언어의 소통이 중요합니다. 그 소통 방법이 바로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의 침공으로 초토화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면서 그 성민들에게 외친 경고입니다. 그 경고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부르짖어야 하는가에 대한 방법과 태도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주를 향하여(18절)
기도의 첫째 조건은 마음이 주를 향하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에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이라고 했습니다. 한 남자로 만족하지 못하고 여러 남자에게 마음을 주는 사람을 음녀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을 성경에는 음녀와 같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관심은 사람들의 빈자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를 세우고 그들의 마음이 주께로 향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주를 향하여 부르짖는다는 것은 주님을 신뢰 하고, 주님의 능력을 확신하며, 응답하심을 믿고, 주님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9절).’ 물을 쏟듯이 힘 있게, 남김없이 그리고 시원하게 나의 마음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18절)
‘처녀 시온의 성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18절),’라고 했습니다. 눈물은 사람을 슬프게도 하고, 사람을 감동시키기도 하며, 사람의 마음을 약하게 만듭니다. 또 하나님의 마음도 감동시킵니다. 이사야 38장을 보면 병으로 죽게 된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원 받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38:5에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내 눈물을 보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의 기도속에서 그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의 눈물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눈물은 회개를 의미합니다. 회개하는 눈물이 하나님을 감동시킨 것입니다. 샘물이 마르면 안 되는 것처럼 눈물샘이 마르면 안 됩니다. 눈물이 마른다는 것은 영적 감동이나 감격이 사라졌다는 신호이며 회개의 심령이 메말랐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쉬지 말고(18절하)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로 쉬게 하지 말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올림픽의 꽃은 마라톤입니다. 마라톤은 끝까지 쉬지 말고 달려야 면류관을 얻습니다.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 달려 갈 길을 마쳤다는 것은 끝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2가지를 조심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1) 금방 교회에 나와서 성령 받고, 신앙의 대가가 되고, 큰 소리 치려는 속성을 지양해야 합니다. 2) 20년 ~ 30년 지나도 성장하지 못하는 병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6-18).’ 모든 예배의 자리에 승리하면 우리의 신앙은 지속적으로 성장합니다. 봉사를 하다가 봉사를 그만뒀거나, 관계가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그 기원을 빨리 제거하고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