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강단말씀 - 한승엽목사 2016. 2. 28
3부: "성경적인 부모의 모습은" (엡 6:4, 잠 13:24)
오늘은 성경적인 부모의 모습에 대해 함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어떻게 우리 자녀를 잘 키우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혹시 자녀가 없으시거나 다 키우시거나 하신 분들에게도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어린이를 양육한다는 것인데, 어른이 되어도 우리가 모두, 속을 들여다보면 어린애일 때가 많습니다. 가지고 놀던 장난감만 달라진 겁니다. 어릴 적에는 땅따먹기로 땅을 확장하려고 애를 썼는데 이제는 사업으로 일터로 확장시켜 보려는 것만 달라진 겁니다. 어릴 적에는 소꿉놀이했는데 자라서는 자기 속을 감추는 기술만 조금 늘었습니다. 어릴 때는 땅으로 쟀는데 지금은 좋은 차로, 좋은 집으로, 금니 했다고 웃을 때 씨익 웃으며 드러내고 재는 것만 좀 달라진 겁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6:4절을 통해서 하지 말 것과 할 것에 대해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 말 것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녀교육의 이런 원칙이 사회생활에 다 적용이 됩니다. 가능하면 기를 꺾지 않는 겁니다. 할 것은 4절 후반절에 ‘기르십시오, 훈련하십시오. 교훈하십시오’ 입니다. 그래서 자녀를 잘 기르려면 사랑하고 징계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 이 세 가지를 한 가지씩 살펴보겠습니다.
1. 사랑해야 합니다(시 1:1-2).
이것을 바울은 기르라는 말로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돌보듯 부모는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른다는 말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보살피듯이 목자가 양을 보살피듯이 인도하고 보호하고 먹여서 사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녀를 잘 기르기 위해서는 우선 사랑해야 합니다. 눈으로 입으로 피부접촉으로 사랑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고 칭찬해서 사랑하는 겁니다.
2. 징계해야 합니다(잠 13:24).
이것을 바울은 훈련하라는 말로 말씀합니다. 자녀를 키울 때 징계의 필요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정말 사랑하면 징계해야 합니다. 징계를 하되 잘하셔야 합니다. 징계를 잘 하는 법 3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분명한 규칙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부모님은 징계를 하는데 일관성이 없고 규칙이 없습니다. 그러면 자녀들에게 혼동이 되고 분이 생깁니다. 자녀를 잘 징계하려면 규칙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부모님은 규칙이 있는데 부모만 알고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말을 해주지 않으니까 자녀들이 눈치 보는 자녀가 되게 합니다.
② 신속하게 벌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벌을 주는 것은 잘못을 깨닫고 고치라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그 기간이 길면 왜 잘못했는지 혼동이 생기고 분이 납니다. 그렇다고 상황과 여건에 관계없이 징계를 주라는 것은 아닙니다. 십대 자녀들은 친구들 앞에서 혼나는 것에 아주 분노가 일어납니다. 자녀를 징계할 때 마음에 분노나 흥분이 있으면 절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는 자녀를 다치게 하기 때문입니다.
③ 자기 행동의 결과를 맛보게 해야 합니다.
징계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맛보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밥을 먹는데 자녀가 자주 투정부리고 안 먹는다면 이때 야단치고 성내는 것은 아주 비효과적입니다. 차라리 다른 가족들은 편안하게 식사하시고 ‘그럼 너는 한 끼 먹지 말아라’ 하는 것이 낫습니다.
3. 가르쳐야 합니다(잠 22:6).
자녀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합당하도록 잘 양육하라고 위탁받은 것입니다. 내 꿈을 대신 이루어주는 것이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줄 아는 자녀로 길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실천하는 자녀로 길러야 합니다.
① 가정이 자녀 신앙교육의 중심입니다.
교회는 가정을 돕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아도 1주일에 168시간에 자녀들이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은 미미합니다. 그래서 자녀 신앙교육은 집에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교회가 그것을 돕는 겁니다.
② 자녀들은 다른 사람을 보고 배웁니다.
듣고 배우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술 마시면서 ‘너는 술 마시지 말아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 아버지를 보고 배웠습니다. 엄마 아빠가 TV 보면서 너희들은 공부해라가 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하는 것을 보고 자란 자녀는 대부분 또 자기 자녀들에게 손찌검하게 됩니다.
③ 가정예배가 신앙교육에 훌륭한 도구입니다.
집에서 가정예배를 드리면 ‘아! 교회에서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밖에서도 교회에서처럼 살아야하는구나’ 하는 아주 강력한 메세지를 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족예배를 드리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적용 : 그래서 자녀를 잘 기르려면 사랑하고 징계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자녀에 관해서는 사실 우리가 무력감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안 됩니다. 자녀들에게 그렇게 사랑을 쏟아도 자녀들이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좋은 학교에 보낸다고 꼭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자녀들은 럭비공과 같습니다. 떨어진 다음에 어디로 튈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자녀 교육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없습니다. 저도 자녀에 대해 이렇게 뻥뻥 큰소리치다가 무슨 일 당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 자녀를 잘 기르려면 예수님을 영접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지 사랑할 수 있고, 징계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자녀를 위해서라도 우리가 더욱 신앙생활을 잘 하실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부 강단말씀 - 한기섭목사 2016. 2. 28
2부: 사울의 회심을 통해 보는 성도의 회심의 의미(행9:1-0, 빌3:1-6)
성도가 된다는 것은 단지 교리를 믿고 예배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울은 회심하기 전에도 하나님을 믿었고 교리를 철저하게 따랐으며 예배와 예식에 철저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교만하고 자기 의에 빠져있던 사울을 헌신되고 겸손한 종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사울의 회심(개종 – 행9:1-8)
사울은 하나님의 율법에 있어서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길리기야 다소에서 태어나 열정적인 유대 가문에서 성장했으며 율법을 신봉하던 율법주의자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십계명을 비롯하여 율법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복잡한 유대주의 예식과 그것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다 지킬 수 없다는 것과 그 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모든 법을 지키고 있으며 하나님 앞에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스스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모든 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자신은 유대인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자신이 속한 유대 민족을 높이 들어 세계를 통치할 민족으로 세울 것으로 믿었습니다. 현세적이고 영토적인 메시야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의로 가득했던 사울은 자신의 죄를 대신 져야 하는 구세주가 오셔야 하는 것의 필요성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메시야는 자신의 세속적인 욕심을 채워줄 통치자일 뿐, 자신의 죄 때문에 오셔야만 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자기가 멸시하던 이방인들과 하나님의 사랑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의를 자랑하며 그 의를 스스로의 노력으로 세우려 했던 사울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의를 거부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 그리스도인들은 사울의 마음과는 완전히 다르게 그리스도는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그 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다고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완전한 희생제물이 되어주셔서 이제는 더 이상 동물로 드리는 희생 제사나 희생 제사에 따르는 의식이 필요 없다고 하는데 분노했습니다. 그가 이제껏 의지하고, 목표로 하던 모든 것들이 송두리째 뽑혀질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2. 이방인을 위한 일꾼(행9:10-19)
사울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섬기던 하나님의 대적자들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종교적인 열정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던 것입니다. 사울은 그 당시 그리스도인의 젊은 지도였던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것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이 죽으면서 했던 말이 사울의 마음을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이 했던 말이나 복음의 선포를 통해서 그의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더욱 더 심하게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스데반의 환난으로 인해 흩어진 자들이 뵈니게와 구브로,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하였습니다. 사울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다메섹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으나 그곳에서 사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의 권능을 인정하게 됩니다. 주님이 사울을 만나주셨던 것처럼 우리 인생 가운데 찾아오셔서 우리와 만나 주십니다.
3. 사울의 믿음(행9:19-22)
우리는 그의 서신서를 통해서 그의 인생이 어떻게 변화 되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 되었습니다. 그의 모든 마음을 다해서 주님께 돌아온 것입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사울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다고 생각한 것이 하나님의 법을 정죄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롬7:7-10)” 주님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신 것과, 오직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롬3:20-26). 주님의 말씀 앞에서 그는 유대인의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는 교만한 야망을 잊어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은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결정하셨고 그를 그곳으로 인도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유명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적용: 진정한 회심은 주님 앞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대적자였으며 그 분을 대항하여 죄를 지었다고 진실한 마음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몰라서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결코 변화 되지도 않고, 새로운 길로 나갈 수 없습니다. 진정한 회심은 우리의 잘못을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항복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