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강단말씀입니다.
“어둠 속에 빛을 비춥시다”
설교: 한승엽목사, 본문: 엡 5:5-14
아직 예수님을 안 믿거나 믿은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에게는 이런 부담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선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니까 천국에 가려면 신자들도 선하고 의로워야 할 것 같은데 예수님만 믿으면 된다고 하니까 부담이 됩니다. 자기보다 인격이나 성품이 떨어진 분들이 예수님 믿고 천국 간다고 하니까 뻔뻔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저런 사람을 천국에 보낸다고 하고 예수님 안 믿는다고 인격이 된 사람을 지옥에 보내신다고 하니까 말이 안 되는 얘기처럼 받아들이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이것이 말이 안 되는 얘기가 아니고 이들의 생각에 칭찬할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선하고 의로우신 분으로 생각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맞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하고 의로워져야 한다는 말도 맞는 말입니다. 어떤 분들은 구원에 대해 강조를 하다 보니까 하나님의 선하고 의로우심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데 이것이 오히려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죄에 대해서, 그리고 신자의 생활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확한 복음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1.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바울이 빛의 자녀답게 살라고 말씀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선하고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로워지려 하고 선해지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선하지 않은 것들, 죄 된 것, 어둠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멀리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멀리해야 하는 이유는,
①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엡 5:6, 롬 5:9). (예:독약)
② 죄에는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엡 5:11).
③ 죄는 우리를 수치스럽게 하기 때문입니다(엡 5:12)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하고 열매가 없고 우리에게 수치심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2.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 이제 새사람이 된 우리는 빛의 자녀로 살 것을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빛의 자녀로 살겠다고 결심하시면 이런 확실한 주님의 약속과 결과가 있습니다.
① 빛의 자녀는 열매가 있습니다(엡 5:8, 갈 5:22-23).
② 빛의 자녀가 되면 어둠이 드러납니다(엡 5:13, 요 3:20).
③ 빛의 자녀는 어둠을 빛으로 바꿉니다(엡 5:14).
핍박과 거부에도 빛을 비추면 우리의 주변도 점점 밝게 빛으로 바뀌어지게 됩니다.
안 믿는 가정에 한 자매가 시집을 갔는데 친척들이 따돌리고 남편에게도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이제 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시댁 어른들과 남편, 자녀들이 모두 예수님을 잘 믿습니다.
내가 빛 역할을 하면 빛은 어둠을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빛은 어둠에 승리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가득한 곳에서 빛이 비치면 마침내 어둠은 물러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님들이 궁극적으로 어둠 가운데서 행복을 모르는 분들에게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사는 것이 빛의 자녀된 우리의 책임입니다. 그들과 더불어서 살아가지만 세상 사람과는 다르게 빛으로 사는 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빛 가운데 사셔서 하나님을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적용 : 그러면 어둠속에 빛을 비추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름달을 보시면 스스로는 빛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렇게 빛이 밝고 환합니다. 낮에 태양의 충만한 빛을 품었다가 밤에 그 빛이 반사되어서 빛이 없는 달에서도 밤이되면 빛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사시키는 빛 노릇을 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빛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우리도 빛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처럼 살기 원한다면 예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둠을 물리치는 일을 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빛 된 자녀로 살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회개입니다. 주님께 찔리는 것이 있다면 즉시 제거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부담이 아니라 성도의 특권입니다.
두 번째는 순종입니다. 우리의 상황과 믿음에 맞게 작은 것부터 시작하시면 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순종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회개하고 순종할 때 주님과 나 사이에 막힌 것이 없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변한 것 없는 것 같고 나는 빛이 아닌 것 같은데 주변 사람들이 그 빛을 점점 봐주기 시작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는 잘 모르겠는데 내가 점점 빛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빛은 주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점점 갈수록 저절로 내 안에 예수님의 빛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귀한 성도님들은 이번 한 주간에도 내 주변의 어둠을 빛으로 바꾸셔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예수님을 닮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부강단말씀입니다.
보배로운 믿음
설교: 한기섭목사, 본문: 벧후1:1-4
베드로 후서가 기록될 당시 초대교회는 2가지 면에서 도전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극심한 박해였습니다. 모라의 폭군 네로와 도미시안의 박해는 조직적이고 비인간적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박해로 목숨을 빼앗기고 삶의 터전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격려, 소망과 인내를 갖도록 하기 위해 베드로전서를 기록해서 보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이단의 공격이었습니다.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교인들에게 이단이 접근하기 시작했고 교회를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한 교인들에게 이단을 경계하고 바른 신앙을 갖도록 권하기 위해서 보낸 것이 베드로후서입니다. 오늘 날에도 교회는 다양한 모습으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마귀는 교회와 성도들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유혹하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악, 드라마, 소설, 신문잡지, 연극, 미술 등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교회를 흔들고 파괴하려고 총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오늘 베드로후서는 이단을 경계하고, 이단을 물리치고, 바른 신앙을 가지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기독교인들을 보배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어떤 보배이며,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보배로운 믿음(벧전1:7)
금보다 귀한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이란 보배는 온갖 행복을 제공합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믿음으로 죄 사함 받아 구원 받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내 것으로 만드는 통로가 되고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됩니다. 벧전1:19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보배로운 피라고 했습니다. 벧전3:4에 예수님을 보배로운 산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보배이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도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고후4:7에서는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질그릇처럼 약하고 잘 깨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보배를 질그릇에 가지게 된 이후로 우리는 보배 항아리가 된 것입니다.
신기한 능력(벧후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바로왕이, 로마사람들은 가이샤 황제가, 일본 사람들은 천황이 신적인 능력을 가졌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신적인 능력이 있다고 믿었던 애굽왕도, 가이샤 황제도, 천황도 다 무너졌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신기한 능력은 자연 질서를 뛰어넘는 초월적 능력 즉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을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모세가 바로를 이긴 것도,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점령한 것도,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도, 엘리야가 아합과 싸워서 이긴 것도 신기한 능력 때문입니다. 자연계는 자정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홍수가 나면 한강이 흙탕물로 변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깨끗해지고, 황사로 인해 대기가 오염되지만 며칠이 지나면 다시 깨끗해집니다. 밀림 속에 서 있는 나무는 일정한 간격이 유지되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밀림의 '자연솎음질'이라는 질서를 통해 나무와 나무사이에 서 있어선 안 될 나무는 저절로 말라 죽음으로 다른 나무가 생존하게 됩니다. 베드로와 바울이 환자를 고쳤습니다. 그들은 은사 훈련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이 그들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지극히 큰 약속(4절)
“이로서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지극히 큰 약속은 “오늘 믿어라 구원을 받는다”는 것과 장차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수많은 약속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약속들은 하나같이 다 성취되고 이루어졌습니다. 유일하게 성취되지 않은 약속이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입니다. 베드로는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벧후3:9). 갑자기 닥친 심판 앞에 약속을 받지 못한 자들은 두려워 떨게 되지만 우리는 이미 약속을 받고 준비하고 기다리기 때문에 겁낼 것도 두려워 할 것도 없습니다(계6:15-17). 계22:20에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 신성한 성품(4절하)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창조당시 하나님의 모양대로 즉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범죄 후 그 성품을 잃고 말았습니다. 죄 짓고 유혹에 넘어가고 사탄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타락한 성품이 신성한 성품으로 변합니다. 이기적인 성품이 이타적인 성품으로, 자기 밖에 모르던 성품이 남을 배려하는 성품으로, 악한 성품이 선한 성품으로, 간교한 성품이, 순전한 성품으로 변합니다.
적용 : 주님은 나의 성품과 나의 생각, 말과 행동을 변화시킵니다. 행동이 변하지 않고 성품이 변하지 않는다면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보배로운 믿음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가정의 귀한 보배이십니다.